마케팅

실무자가 알아야 할 박카스 마케팅 전략

때롱스 2009. 8. 2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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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이름의 유래
박카스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이다.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은 간장을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이름을 생각하던 중 독일유학 시절에 본 함부르크 시청의 지하홀 입구에 서 있었던 술과 추수의 신상 박카스를 떠올리게 됐다.

박카스의 역사

처음 박카스는 박카스정이라는 알약의 형태로 출시(1961년)됐으나 알약의 당의가 녹는 문제가 발생해 1962년 20㏄앰플 형태인 박카스내복약으로 바뀌었고 1963년 현재와 같은 드링크 형태의 박카스D(drink)가 정착됐다

박카스의 브랜드 가치는?
1961년 출시 이후 47년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박카스’의
최소 2000억∼4000억원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박카스는 얼마나 팔렸나?
‘ 지금까지 팔린 ‘박카스’ 병은 2007년까지 약 159억4000만병으로 판매된 ‘박카스’ 병을 이으면 지구를 47바퀴 돌 수 있다. 충남 천안공장
의 ‘박카스’ 생산라인에서는 분당 2400개의 ‘박카스’가 생산되며 이 속도는 기관총 발사 속도의 4배에 달한다.

박카스 약의 편견을 깬 첫 제품?
그는 "최초 정제(알약) 형태로 발매했지만, 맛있고 편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액체형태로 다시 발매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제품"이라며 "일반적으로 `약은 맛없다`는 편견이 있는데, 박카스는 이러한 편견을 깬 첫 제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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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마케팅 활동
성분·효능을 내세우는 마케팅에서 감성적 호소하는 마케팅으로 변화
국민 건강드링크’ 박카스가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광고마케팅과 각종 이벤트를 통해 매출 정체를 극복하고 신화를 이어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킬 것은 지키자’ ‘젊음은 나약하지 않다’ 등의 CF를 통해 기존 중장년 소비자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최근엔 젊은 프로게이머들의 열정과 도전정신이 살아있는 ‘박카스배 스타리그’를 후원하고 있다. 또 원조 대학생 국토순례 행사인 ‘대학생 국토대장정’은 10년째 대학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박카스배 천원전’도 기업이 스폰서가 된 최초의 바둑대회로 바둑계의 신인 등용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동아제약에서 박카스 매출비중

과거 동아제약 매출의 50% 가량을 차지하던 박카스는 신약개발 투자금의 원천이었다. 지금도 전체 매출의 18%를 차지하는 주력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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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 박카스 탄생!
피로회복과 간기능개선이라는 뛰어난 효능효과는 장수의 원천이자 비결이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명성을 얻고있는 Made In Korea의 자긍심이 되기도 했다.

박카스 초기 전략적 판매 방식은?
박카스는 처음에 종합간건강영양제라는 표지를 내걸고 셀링포인트도 술에 맞추어 간장보호에 중점을 두었다. 판매방법으로는 과감한 샘플공세 작전을 펴 나갔다. 거래처는 물론 사원들의 가정과 친구들에까지 음주전후에 박카스를 먹으면 간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계몽과 함께 대대적인 샘플링을 전개했다. 이러한 전사적인 노력은 곧 열매를 맺어 "박카스-정"의 월간매출이 100정 포장단위로 1만개까지 늘어날 정도였다.

그러나 박카스-정 발매 이듬해 봄으로 접어들면서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하며 동아제약은 전격적으로 박카스의 제형을 당시 소비자 호응도가 높은 20cc 앰플제로 변경해 박카스 내복액을 재발매 했다. 청량감이 우수했던 박카스 내복액은 출발이 순조로왔지만, 동아제약은 한번 더 제품 개선을 실시할 상황에 놓였다. 그 이후 발매한 것이 현재와 같은 형태의 드링크 타입인 박카스-디였다.


박카스 공격적 시장공략
동아제약은 잦은 제품 개량으로 회사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대량광고(Mass Communication), 대량판매(Mass Sale) 전략, 이른바 "3M 전략"을 세우고 공격적인 시장공략을 전개하였다.

동아제약은 그때까지 의약품의 광고 스타일인 전문지를 통한 의사, 약사 대상의 광고방식에서 탈피, TV, 라디오, 신문, 잡지, 옥외광고 등 모든 매체를 총동원했다. 특히 한창 선풍적인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TV 매체에 중점을 두었고, 박카스의 광고에 톱니바퀴를 심볼로 한 패키지를 도입하고 활력을 마시자라는 메인카피로 제품의 차별화를 도모한 다양한 형태의 광고활동을 전개해 갔다.

인기 코미디언 "김희갑"을 등장시킨 증언식 광고, 여성소비자의 창출하기 위한 유명 여배우 남미리를 등장시킨 시리즈 광고,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 외화 "전투"(Combat)에 대한 독점 협찬광고 등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차별화 된 크리에이티브 전략과 대대적인 광고 물량작전은 그 효과가 곧 나타나 발매 초, 1963년 월평균 35만병을 상회하는 획기적인 기록을 보였고 그 이듬해에는 월평균 56만병으로 급증하였다. 더불어 박카스는 드링크제로 발매한지 1년만인 1964년 드링크제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박카스 혁신적인 유통전략
박카스의 성공은 혁신적인 유통전략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의약품들은 도매상을 거쳐 소매약국에 출하되는 유통경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동아제약은 과감하게 소매 직거래를 뼈대로 하는 특약점 제도를 도입해 소매약국에 박카스를 직접 유통시켰으며, 이러한 유통 전략은 현재 박카스 루트세일이라는 동아제약만의 독특한 유통시스템의 기반이 되었다. 2008년 현재 박카스 루트카는 전국 2만 개 약국 중 1만 9천 개에 이르는 약국에 방문해 박카스를 공급하고 있다. 

박카스 광고전략 흐름
장수상품 박카스의 성공 뒤에는 시련도 있었다. 1976년 7월 드링크류 의약품의 일반 대중 매체 광고 금지로 박카스의 성장률은 낮아진다. 하지만 동아제약은 자양강장드링크제의 광고 해금이라는 기회를 활용해  대량광고 전략을 펼치기로 하고 광고안도 기존 드링크제 광고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휴머니티 광고를 전개하기로 결정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선보인 광고가 묵묵히 음지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들을 담은 "새한국인 시리즈" 캠페인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라는 명카피들로 시작된 박카스 광고는 "박카스류 광고"라는 광고계에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다. 힘과 활력으로 대표되던 드링크광고에 잔잔한 감동과 묵묵히 일하는 휴먼스토리를 펼쳐 소비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중장비수리공과 수위아저씨""학생과 버스기사""스승과 제자""택시기사와 딸""농촌부부""환경미화원과 아들" 등으로 이어진 "새한국인" 캠페인은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고 이는 바로 매출증가로 이어졌다.

박카스 시대 변화에 맞는 마케팅활동
광고재개로 다시 급격한 매출 증가를 보였던 박카스에도 고민은 있었다. 오래된 브랜드로서 타깃층이 한정되었던 것이다. 동아제약은 브랜드의 노화를 막겠다는 전략아래 과감하게 타깃전환의 새로운 캠페인을 진행한다. 새로운 캠페인은 "젊음은 결코 나약하지 않다"와 "젊음 지킬 것은 지킨다"였다. 이후로 동아제약은 젊은 층 대상의 "건강한 사람들"을 소재로 지금까지 계속 광고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젊은 층은 현재의 마케팅을 선도하기도 하지만 미래의 가장 큰 고객이 된다. 특히 장수상품의 경우에는 그 의미가 더 크다. 박카스가 히트상품으로 오랫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심을 지키면서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 지속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박카스는 지금도  그간 쌓아온 박카스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는 마케팅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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